①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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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킬로이의 <마스터스> 우승은 골프 그 이상의 가치!"..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 로리 매킬로이
현대 골프의 첫 시작은 1860년도에 처음 열린 이다. 2025년 4월 13일 로리 매킬로이가 1860년 시작된 골프 역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매킬로이는 2025년 4월 13일 챔피언에 올랐고,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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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매킬로이는 1989년 5월 북아일랜드의 홀리우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걸어서 갈 수 있는 인근 '홀리우드 골프클럽'에서 근무했다.
그의 부친은 싱글 아마추어 이상의 골프실력을 갖췄다.
매킬로이는 네살 크리스마스 때 플라스틱 골프채를 선물 받고 그 채를 손에 쥔 채 잠이 들었다.
부친을 따라 자연스럽게 골프코스와 친숙해졌고 골프를 좋아했다.
부친은 아들에게 스윙을 가르쳤다.
실력이 점점 좋아졌고 전문 코치가 필요했다.
매킬로이 부모님은 아들의 레슨비용과 각종 대회 참가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2 잡을 뛰었다.
매킬로이는 우승 세리머니 연설에서도 밝혔듯이 1997년 그 어린 나이에(8세)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
부친과 함께 1997 <마스터스>에서 타이거 우즈가 우승하는 경기를 보고 "프로가 되어서 메이저 우승하겠다"라고 스스로 다짐한 것.
신기한 것은 그 약속과 다짐이 흔들리지 않고 프로선수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매킬로이가 국제무대에서 처음 우승한 것은 열살 때였다.
미국에서 열린 10세 미만 선수권 대화에서 우승했다.
이후로도 아일랜드에서 열린 각종 크고 작은 아마추어 대회에서 밥 먹듯 우승했다.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도 했다.
200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미국 대학 장학생 입학)과 프로전향을 놓고 고민하다 전격 프로전향을 발표했다.
2007년 가을 유러피언 투어(DP월드 투어) 초청 대회 4개 출전만에 2008년 공식 투어카드를 얻을 성적을 냈다.
2008년에 공식적으로 프로로 데뷔하고 첫 풀 시즌을 맞았다.
준우승 두번 등 탑 10 7회 진입, 연말 세계랭킹 32위로 첫 시즌을 마감했다.
32위는 2009년 4개 메이저 출전을 보장하는 순위이다.
2007년 매킬로이의 랭킹은 270위였다.
2009년 처음 프로 첫 승 달성.
1월, 19세에 <두바이 데저트>에서 우승했다.
처음 출전한 <디 오픈> 메이저에서 단독 3위를 했다.
연말 세계랭킹 첫 탑 10 진입.(9위)
매킬로이는 2010년에 PGA 투어에 공식 조인했다.
5월 2일, 스무 살에 <웰스 파고 챔피언십>에서 PGA 투어 첫 승을 신고했다.
주최 측 초청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우승하고 PGA 투어 공식 멤버가 되었다.
<웰스 파고>에서 매킬로이는 겨우 컷을 통과한 후 3라운드 66타(-6), 4라운드에서 61타(-9)를 치고 우승하면서 대회 주인공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준우승 선수가 필 미켈슨.
매킬로이는 당시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연말 세계랭킹 10위.
2011년 4월 <마스터스>.
매킬로이는 4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시작했다.
10번 티샷 실수 후 급작스럽게 무너졌다.
최종 80타를 치고 공동 15위로 대회를 마쳤다.
매킬로이 본인에게도 충격이었지만 골프계도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2개월 뒤 매킬로이는 <US 오픈>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했다.
우승 스코어 16언더파, 2위 제이슨 데이에 8타 앞선 대승이었다.
그 어려운 코스에서 4일 내내 60대 타수를 기록했다.
4일간 60대 타수를 친 선수는 매킬로이가 유일했다.
매킬로이의 이날 <US 오픈> 우승 스코어는 대회 역사상 최저타 우승이고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매킬로이는 <US 오픈> 이후 PGA 투어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유럽투어에만 전념했다.
따라서 2011년 매킬로이의 PGA 투어 기록은 없다.
연말 세계 랭킹 3위.
2012년 2월, 22세에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다.
이때 우승도 2위에 8타 차 대승이었다.
2012년 메이저 1승 포함 투어 4승을 했다.
연말 세계랭킹 1위.
2012년 연말 전세계 골프계가 깜짝 놀랄 뉴스가 발표되었다.
나이키는 1997년 처음 타이거 우즈를 빅 모델로 내세워 골프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우즈의 계약조건은 5년에 2억 달러.
우즈는 2012년 초기 5년 계약이 끝나고 재계약을 한 상태.
나이키는 우즈 외에 또 다른 선수를 선택, 우즈와 같은 조건으로 초대형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그 주인공이 로리 매킬로이이다.
매킬로이는 2008년 프로도 데뷔하면서 2012년까지 두바이의 주메이라 인터내셔널과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그 계약이 종료되고 매킬로이는 나이키와 인연을 맺었고 지금도 나이키의 1순위 모델이다.
타이거 우즈는 1년 전 나이키와 계약이 끝난 후 자신의 의류 브랜드를 따로 론칭했다.
2013년 처음으로 PGA와 유럽 투어에서 우승없이 한 해를 보냈다.
다만 연말 호주에서 열린 <호주 오픈>에서 우승했다.
연말 세계랭킹 6위.
2014년 최절정기를 보냈다.
메이저 <PGA 챔피언십>과 <디 오픈>에서 연속 우승했다.
25세 3개월에 메이저 4승 달성.
남자 골프 역사상 25세 미만 나이에 메이저 4승을 달성한 선수는 바비 존스,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단 4명뿐이다. 이기록은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다.
연말 세계랭킹 1위.
이때부터 매킬로이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매킬로이의 컨디션과 익히 알려진 기량이라면 2015년 당장 <마스터스>에서 우승하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정 반대로 흘렀다.
<마스터스>는 커녕 다른 메이저 대회에서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매킬로이는 이후 PGA 투어에서 19승을 했지만 메이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등 골프 팬들의 관심은 그의 메이저 우승과 <마스터스> 우승 여부를 매년 이슈화했다.
매킬로이는 큰 덧에 걸린 듯 메이저 대회에서 어느 순간 무너졌다.
올해 <마스터스> 우승까지 11년을 그 '메이저 지옥'에서 살았다.
2015년 PGA 투어와 유럽 투어에서 각각 2승을 했다.
하지만 <마스터스>에서 우승은 없었다.
8월까지 세계랭킹 1위를 지켰지만 연말에 조던 스피스가 세계랭킹 1위에 처음 올랐다.
조던 스피스는 2015년에만 <마스터스>와 <US 오픈> 메이저에서 우승했다.
매킬로이는 2015년 <디 오픈>에 참가하지 못했다.
디펜딩 챔피언이었지만 대회전 축구경기를 하다 오른쪽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사용했다.
매킬로이는 이제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 등 대 선배들과의 경쟁과 함께 조던 스피스, 더스틴 존슨 등과의 세계랭킹 1위 경쟁에 돌입했다.
아담 샌들러 게시물 뿐만 아니라 타이거 우즈, 라파엘 나달, 유명 프로축국 선수, F1 선수, 복싱 선수는 물론, 북아일랜드의 총리, 필 미켈슨, 존 람, 루크 도널드 등 수 많은 선수들과 셀럽들이 매킬로이의 이번 마스터스 우승과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공개적으로 축하했다. 축하의 메시가자 넘쳐났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이다.
③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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